기념관은 지금

자세히 알아야 보인다,

독립기념관 속 숨은 역사를 찾아서

기념관은 지금

정리 편집실    사진 이소연


독립투사들의 얼이 살아 숨 쉬는 독립기념관에는 독립운동사를 기억하고 이를 기념하는 상징물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그중 겨레의탑·태극기한마당·겨레의집은 독립기념관을 찾는 이들이라면 꼭 들리는 장소로 자리 잡았다. 찾아보면 이 밖에도 꼭 한번 둘러보아야 할 곳이 적지 않다. 광복의 달 8월, 독립기념관을 둘러보며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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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철거부재 전시공원

일제강점기 착취와 억압의 상징물

조선총독부 철거부재 전시공원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식민잔재의 청산과 민족정기 회복을 위하여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철거부재를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하여 전시공원을 조성하였다.


왜 독립기념관은 조선총독부 건물을 전시했을까

일제는 1910년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압으로 빼앗은 후 식민통치기구로서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후 남산 왜성대에 설치한 한국통감부 건물을 사용하였으나 1926년 경복궁 건물을 일부 헐고 그 자리(현 광화문)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새로 지어 이전하였다. 이후 1945년 8월 15일 패망할 때까지 19년간 식민통치의 상징으로 이 건물을 청사로 활용하였다. 광복 후 조선총독부 건물은 미군정청·대한민국 정부 청사·국립중앙박물관 등으로 사용되었다.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철거부재를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하여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놓치지 말아야 할 체크포인트

1. 의도된 위치와 배치

조선총독부 철거부재 위치를 해가 지는 곳, 독립기념관의 주 건물인 겨레의집 서쪽에 조성하였다. 이는 일제 식민통치의 몰락과 함께 식민잔재 극복 및 청산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철거부재 중 첨탑을 지하 5m 깊이로 반 매장하여 정면에서 봤을 때 우리의 눈높이보다 낮게 배치하였다. 이는 일제강점기 착취와 억압의 상징물을 최대한 ‘홀대하는’ 방식으로 의도한 연출이다. 이곳 반대편 동쪽에는 ‘통일염원의 동산’이 조성되어있다.


2. 화려한 건축 양식

일제의 검은 속내를 철거부재의 크기와 장식 등에서 찾아낼 수 있다. 당시 초대형 건축물이었던 조선총독부 건물은 ‘오래오래 영원토록 조선을 지배하겠다’라는 일제의 속셈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지붕과 기둥 등에 꾸며진 화려한 장식을 보면 일제가 얼마나 힘을 과시하고 싶어 했는지 엿볼 수 있다. 이 화려하고 높은 조선총독부 건물을 보는 조선인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헤아려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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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철거부재 전시공원 전경(좌) / 조선총독부 철거부재(우)



선열들의 고귀한 뜻을 기리는 공간

추모의 자리


애국선열들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 겨레의 영원한 번영을 다짐하는 공간인 추모의 자리는 독립기념관 상단에 위치하고 있다. 좌우에는 봉화대가 있고, 중앙에는 돌계단과 태극홈(분수대)·벽부조가 자리하고 있다.


돌에 새겨진 조각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추모의 자리 중앙에 자리한 태극홈은 전통적인 한옥의 ‘지붕 선’을 새롭게 응용한 ‘돌 제단’ 형태를 띠고 있다. 태극홈에서 끊임없이 잔잔하게 흐르는 물은 우리 선조들이 못다 이룬 한 맺힌 울분과 맑은 민족정신 그리고 민족의 근원을 상징한다. 태극홈 아래에는 “피땀으로 지켜 이 터전을 물려주신/ 가신 임들의 고마움을 되새겨/ 겨레여 이 나라를 길이 빛내자”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아울러 태극홈을 병풍처럼 둘러싼 벽부조와 봉화대는 폭 105m·높이 3∼7m의 크기로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민족의 탄생을 상징하는 조각이 새겨져 있다.


놓치지 말아야 할 체크포인트

1. 105인 층계

추모의 자리에 오르려면 105개의 계단을 올라야한다. 이는 일제의 애국지사 탄압사건인 105인 사건을 상징한다. 105인 사건은 1911년 일제가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의 암살미수사건을 조작하여 105인의 독립운동가를 감옥에 가둔 사건으로 애국계몽운동 시기의 비밀결사조직인 신민회가 해체되는 원인이 되었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105인 층계를 산책하며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애국선열들의 정신을 기려보자.


2. 모바일 AR서비스

추모의 자리에 도착하면  AR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있다. 모바일에서 ‘현충시설 기념관 안내’ 앱을 다운로드하면 야외전시물 AR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 실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확인해볼 수 있는 AR서비스 이외에도 텍스트로 보이는 AR서비스도 받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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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자리_봉화대(좌) / 모바일 AR서비스 자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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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인 층계



짧은 글에 응축된 나라사랑 정신

시·어록비


독립기념관 내 야외 곳곳에는 애국선열들의 시·어록비가 건립되어 있다. 임진왜란 당시 국난을 극복한 이순신을 비롯해 일제침략기 애국선열들의 민족혼과 자주독립의지가 담겨있다. 


독립기념관에는 몇 개의 시·어록비가 있을까

현재 독립기념관 내에는 105기의 시·어록비가 있다. 독립기념관은 관련 내규에 따라 독립운동가 후손의 건립신청서를 받아 소정의 선정위원회 및 설치심의위원회를 거쳐 독립운동가 시·어록비 설치를 허가하고 있다. 독립기념관은 설치 장소를 제공하고 관리를 맡으며, 모든 설치비용은 설치 희망자 부담으로 운영하고 있다. 짧은 글에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웅축되어있는 시·어록비는 우리 청소년에게 나라사랑 정신을 선사하는 소중한 교육의 장이다.


놓치지 말아야 할 체크포인트

1. 8월에 눈 여겨봐도 좋을 시·어록비

8월의 녹음 속에 유독 ‘자주 독립’이라는 큰 글자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국독립운동을 이끈 김규식과 여운형의 합동 어록비다. 두 사람은 일제강점기에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며, 1946년에 좌우합작운동의 중심에 서서 활동했다. 두 사람의 합동 어록비는 이들이 평생 독립운동의 최고 가치로 강조한 ‘자주’와 ‘독립’을 조각하여 멀리에서도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도록 했다. 그 아래 내용은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민족의 총체적 의지가 중요함을 역설한 구절을 선택하였다. 어록비의 디자인은 민중화백으로 알려진 임옥상 작가가 맡았으며, 우사 김규식연구회와 ㈔몽양 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기획하고 성금을 모아 설치하였다.


2. 시·어록비 위치 찾기

독립기념관 홈페이지에서 시·어록비 위치도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현재 독립기념관에는 105기의 어록비가 곳곳에 흩어져 자리하고 있으니, 위치도를 활용하면 슬기로운 관람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독립기념관 입구에도 시·어록비 안내도가 설치되어있으니 입장할 때 미리 안내도를 사진 찍어 놓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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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식·여운형 합동 어록비(좌) / 시·어록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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