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에 걸친
재일조선인의 삶을 조명한
이민진 작가
글 편집실 사진 인플루엔셜 제공
소설 『파친코』는 4대에 걸친 재일조선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이 2017년 처음 출간한 이 소설은 그해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는 등 주목받았다.
한국에서는 2022년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이민진
출생 : 1968년 서울
수상 : 대한민국 만해문예대상, 제2회 부천 디아스포라 문학상, 삼성행복대상 여성창조상 등
대표작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파친코』 등
『파친코』는 2017년 한 번, 2022년에 또 한 번 주목받았다.
2017년 처음 출간한 『파친코』 지난 해 4월 기존 출판사와 계약이 종료되면서 절판됐다. 이후 2022년 새로운 번역과 디자인으로 재출간했다. 새 출판사를 결정할 때 번역이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다.
원작의 의도를 충실히 살린 개정판이 마음에 든다. 또한 종이책뿐만 아니라 오디오북으로도 만나볼 수 있다. 오디오북은 효과음과 BGM, 캐릭터들의 특성을 살린 국내 최고 성우들의 목소리로 작품의 매력을 극대화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오디오북을 통해 원작의 감동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사회에서 먼저 호응을 얻었다.
평소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사회적 사실주의를 표방한 19세기 영미 문학을 즐겨 읽으며 글쓰기 훈련을 했다. 내 글이 스타일적인 측면에서 영미 문학에 가깝기 때문에 미국 독자들의 호응을 먼저 얻은 것 같다.
2017년 처음 책을 출간했을 때 ‘북토크’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이 미국 독자였다. 한국인과 아시아인은 보이지도 않았다. ‘한국인들이 날 싫어하나?’라는 생각도 했다(웃음). 그런데 최근 3년 사이 한국 독자가 부쩍 많이 늘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책이 읽히고 있지만, 한국 독자들이 『파친코』에 보여주는 관심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실제 이야기가 글의 소재가 되었다고.
나는 일곱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예일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하던 열아홉 살 무렵, 한 특강에서 따돌림으로 자살한 재일교포 소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소년의 중학교 졸업앨범에는 ‘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 ‘너한테 김치 냄새가 난다.’ ‘난 네가 너무 싫다.’ 등이 쓰여 있었다고 한다. 그 사연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오랜 시간 뇌리에 박혀 있었다. 이후 소설을 쓰고자 다짐했을 때 자연스럽게 재일교포와 관련된 자료부터 찾아보았다. 그렇게 『파친코』가 시작되었다. 내 인생을 소비할 만한 주제를 발견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작가가 되려고 변호사를 그만뒀다. 언제부터 그런 꿈을 가졌나.
내가 학생이던 시절에는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 미국 사회에서 작가가 된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작가가 돼야겠다’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성인이 되어 변호사로 일하던 중 간염에 시달리게 되었는데 불현듯 ‘시간이 얼마 없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라고 결심했고, 앞만 보고 달리던 삶을 정리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부천 디아스포라 문학상 수상 당시 촬영 사진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첫 문장이 인상적이다.
내 소설들의 모든 첫 문장은 책 전체를 드러내는 ‘주제문’이다. 초고 단계에서 마음에 드는 첫 문장을 쓴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첫 문장을 위해서 책을 수없이 고쳐 쓴다. 몇 번의 퇴고를 거치면서 조금씩 첫 문장이 두각을 드러낸다. 수많은 시간을 고군분투한 후에야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해지고 내가 가진 질문에 대한 답이 떠오른다. 『파친코』의 첫 문장도 그렇게 탄생했다.
재일조선인의 삶을 오롯이 전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나.
‘자이니치’라고 불리는 재일조선인의 역사와 사회·법·인류학에 대해 최대한 많이 배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문헌 연구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후 일본계 미국인 남편과 함께 4년간 일본에 머물며 수많은 재일조선인을 직접 인터뷰했다. 기자처럼 기록하고, 학자처럼 논문을 쓰는 작업 형식을 취했다. 재일조선인만의 역사를 존중하고 싶었기 때문에 소설을 쓰려면 더 많은 숙제를 해야 했다.
『파친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부족한 것을 바로잡고 싶었다. 한국이 어떻게 일본의 식민지가 됐는지를, 재일조선인을 전 세계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재일조선인들은 지금도 모욕당하고 있고, 지저분하며 부도덕하다는 비난을 받는다.
이런 편견을 옹호할 수는 없었다. 억압받고 어려움이 있으면 우리는 반항할 수 있다. 불평등 앞에서 저항할 수 있고, 낙심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세상엔 불공평한 게 너무 많지만 계속 나아가고 전진해야 한다.
집필 중인 다음 소설도 기대된다.
한국인들에게 교육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룬 소설을 집필 중이다. 전 세계에 있는 수십 개의 학원을 방문하고 많은 사람을 인터뷰했다. 교육은 사회적 지위, 부와 떼어놓을 수 없는데 교육이 사람들을 억압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소설 제목 역시 교육기관 ‘학원’을 뜻하는 영어 단어 ‘Academy’가 아닌 ‘Hagwon’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일본 단어 ‘파친코’를 그대로 소설 제목으로 사용한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인을 이해하려면 전 세계인들이 학원 개념을 알아야 해서 우리말 단어를 고집한 것이다. 찰스 디킨스를 읽을 때는 영국인의, 헤밍웨이를 읽을 때는 미국인의 마음을 경험한다. 우린 항상 책 속 주인공이 되곤 하지 않나. 전 세계 독자들이 ‘파친코’를 읽으며 한국인이 되어 봤으면 좋겠다.
2022년 출간된 『파친코』 개정판(인플루엔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