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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패망을 예견한 임시정부는 끊임없이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들과의 연합을 시도했습니다. 대표적인 세력이 옌안의 화북조선독립동맥(이하 독립동맹)입니다.
화북조선 독립동맹 -
조선독립동맹은 화북으로 이동한 조선의용대와 중국공산당 지역인 옌안에서 활동하던 세력이 결합하여 조직한 단체입니다.
"화북조선독립동명 위원장 김두봉입니다. 조선독립을 쟁취하자는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우리와 함께 싸웁시다." -
- "난 공산주의자가 아닌데, 함께 해도 될까요?" "누구라도 괜찮으니 힘을 모읍시다."
- "난 일본을 위해 일한 경력이 있는데..." "이전의 과오를 청산하고 함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할 각오만 되어 있다면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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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임시정부는 독립연맹과 그 무장조직인 조선의용군과의 연계를 추진하였고
"일단 임시정부와 독립동맹의 통일을 도모하고" "양측의 무장세력인 광복군과 조선의용군을 한 곳에 집결시켜 활동하면 되지 않을까요?" -
양측 지도자들은 편지를 통해, 압록강에서 두 단체의 군대를 합류시키자는 의견에 합의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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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는 또한 연해주 한인부대와도 연계를 시도했습니다. 한인부대는 만주에서 활동하다가 러시아 지역으로 건너한 항일유격대를 말합니다.
쑥 쑥 -
이들은 산악지대에 숨어있다 불시에 일본 관공서를 습격하거나 일본경찰을 사살하기도 하는 등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나들며 활발한 항일투쟁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두두두 끄아악! -
1940년 이들이 러시아로 이동한 후, 임시정부에서는 소식을 접하지 못하다가...
"러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충모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러시아에 있는 우리 한인부대에 대한 소식을 알리고 싶었소." -
임시정부는 소련의 한인들과 연계하기 위해 연락원을 파견했습니다.
"연해주 한인부대를 찾아 임시정부의 입장을 전해주시오. 반드시 힘을 모으자고 말이오." "꼭 임무를 완수하고 오겠습니다." -
임시정부의 연락원이 베이징에 다다랐을 때
"만세~ 만세" "일본이 항복했다! 전쟁이 끝났다." "엥? 그럼 난 더 이상 갈 필요가 없는 거네?"일제의 항복 소식으로 이들 사이의 연계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뜻 깊은 시도였음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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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한인사회와의 연계도 빼놓을 수 없지요. 임시정부가 그 조직을 유지 운영하면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미주 교포들의 재정적 후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임시정부가 광복군을 조직한대요!" "힘이 있으면 힘을, 돈이 있으면 돈을 내라! 좋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을 모아야지." "청소하면서 어렵게 모은 돈이지만 임시정부를 위해 쓰겠어요!" -
미주지역 여러 단체들이 연합해 결성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는 오랫동안 임시정부의 산하기관이나 다름없이 대미 외교를 전담했습니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 "힘내라 힘! 대한독립만세!" -
일찍부터 국내와의 연계를 위해 연통제, 교통국 등을 설치했던 임시정부는 다시 한 번 국내 독립운동세력과 힘을 합하기 위해 1944년, 국내공작위원회를 설치했습니다.
"우리의 임무는 연합국의 상륙에 대비하여 국내에 거점을 확보하는 것과" "이를 실행에 옮길 한국 청년들의 조직을 만드는 일이다!"운영이나 활동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지만 임시정부에서 두 사람을 국내 비밀공작원으로 파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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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국내 독립운동 세력도 충칭의 임시정부와 옌안에 있는 독립동맹과의 연계를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조선건국동맹 대표 여운형입니다. 우리 건국동맹에는 농민, 노동자, 청년, 학생, 교사, 회사원 등 다양한 계급계층과, 다양한 이념을 가진 이들이 참여해 철저히 비밀결사로 움직이고 있지요."- 농민
- 노동자
- 청년
-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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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동맹은 1945년 5월 말, 임시정부와의 접촉을 위해 연락원을 파견했습니다.
상호 연락 및 거리상의 문제로 인해, 또 일제의 패망으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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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임시정부가 시도했던 국내외 독립세력과의 연계 추진은 광복 후 좌우합작운동과 남북협상을 주도하는 귀중한 역사적 경험이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