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권준 (權晙, 1895 ~ 1959)
경북 상주(尙州) 사람이다. 1917년 광복회(光復會) 조직에 참여하여 격렬한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였다. 1921년 북경(北京)에서 김원봉(金元鳳)과 같이 의열단(義烈團)을 조직하고 군자금 조달, 폭탄제조 등의 임무를 맡아 종로서, 총독부, 동척(東拓) 등의 폭탄 투척과 동경 이중교(二重橋) 투척 등을 적극 지원하였다. 1926년에는 황포(黃 )군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수료하고 북벌전(北伐戰)에 참전하여 활약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한구(漢口)에서 개최된 한국, 중국, 인도, 몽고, 안남(安南), 대만인 등으로 조직된 동방피압박민족연합회(東方被壓迫民族聯合會)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여 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1932년에는 남경(南京)에서 중국정부의 후원을 받아 한국인군사학교를 설립하고 그 교관으로 독립운동 간부를 양성하는 한편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에 입당하여 활약하였다. 1934년에는 중국군 연장(連長)으로 독립운동을 측면 지원하면서 항일전에 참전하였다. 1944년 중경(重慶)에서 임시정부에 들어 와 내무부차장에 임명되어 활약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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