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독립운동

욱일기(旭日旗),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이다

끝나지 않은 독립운동
글 이계형(국민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욱일기’는 일본 국기인 일장기의 둥그런 붉은 태양 문양 주위에 아침 햇살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광선을 형상화한 것을 이른다. 이를 욱광(旭光)이라고 한다. 지난달 일본 해상자위대 창설 70주년을 맞아 열린 관함식에서 우리 군함의 군인들이 욱일기 모양의 해상자위대기에 경례하여 논란이 일었다. 얼마 전에는 2022 카타르 월드컵 경기에서 일본인이 욱일기를 관중 단상에 내걸려고 시도했다가 철거되기도 했다. 이렇듯 욱일기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동남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왜 외면받고 비난받는 것일까? 


에도시대부터 시작된 욱일기의 역사

욱일기의 역사는 대강 이렇다. 지금의 욱일기로 정형화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에도시대(1603년)부터 일본의 전통적인 상징으로 사용되어왔다고 한다. 욱광은 일본 일족(一族)의 가문 문장이나 민간에서 출산·명절·축하·기원의 뜻으로 사용됐던 것이었다. 그러다가 1870년 5월 메이지유신 때 육군을 창설하면서 욱일기를 군기로 채택했고, 1889년 10월 해군도 이에 따랐다. 차이점은 전자는 원이 중앙에 있지만, 후자는 약간 왼쪽으로 치우쳐 있다. 이때 군기는 16조 욱일기(十六?旭日旗)였다. 이는 일왕 가문의 국화꽃이 16장인 것과 관련성이 깊다고 한다. 이는 1945년 8월 일제가 항복할 때까지 사용되었다.

욱일기가 문제가 되었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가 아시아 각국을 침략할 때 육군과 해군에서 욱일기를 전면에 내걸어 일제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깃발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1942년부터 3년 동안 일제에 점령되었던 말레이시아를 한 예로 들어보자. 당시 페낭섬의 일본 해군기지에 독일 U보트가 파견되었는데, 독일 승무원들을 위한 일본 해군의 환영식이 열렸다. 이때 욱일기가 독일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와 나란히 걸렸다. 이를 통해 욱일기를 전범기로 이해하게 되었다.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면서 일본군은 해체되었고 이에 욱일기는 자연히 사용이 중지되었다. 이후 1954년 7월 자위대가 창설되며 욱일기가 다시 쓰이기 시작했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붉은 16줄 무늬 욱일기를 군기로 제정했고[자위함기], 육상자위대는 이를 약간 변형한 8줄 무늬 욱일기를 채택했다[자위대기]. 이와 달리 항공자위대는 단순한 붉은 원을 상징으로 사용한다. 자위대는 방어를 위해서만 무력을 보유, 행사할 수 있게 되었기에 그들이 욱일기를 다시 사용한다고 하여 한국을 비롯한 일제에 침략당한 국가는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일본 우익의 군국주의 망령이 되살아나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 일본 안팎으로 “일본의 노인 세대가 어린 세대에게 지나간 역사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라는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본이 ‘패전국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고이즈미 정권부터 우경화 흐름이 엿보이기 시작하면서 이웃 나라들과 마찰을 빚었다. 우익 사관의 일본 역사 교과서가 채택되는가 하면, 아베 정권이 들어선 2012년부터는 욱일기를 들고 길거리를 행진하는 극우 시위대가 나타났다. 더욱이 욱일기를 단 일본자위대의 국제적 활동이 예전과 달리 활발해졌으며, 2015년에는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해졌다. 이로써 자위대는 일본이 직접 공격을 당하지 않더라도 안전이 위협받거나 국제사회의 평화가 위태롭다고 판단될 땐 세계 어디서든 교전이 가능해졌다. 

이처럼 일본 우익의 군국주의 망령이 되살아나면서 욱일기를 사용해 일본제국이나 일본군 혹은 일본의 전쟁 범죄를 찬양하거나 미화, 선동하는 예도 종종 있다. 이와 더불어 상업용 욱일기가 많은 제품과 디자인, 의류, 포스터, 맥주 캔, 밴드, 만화(Fantastic Four / Iron Man: Big in Japan, June 2006), 애니메이션, 영화, 비디오 게임(E. Honda의 Street Fighter II 무대) 등에 사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일본 내에서는 축제와 이벤트뿐만 아니라 선박의 장식용 깃발로 사용된다. 또한 비일본계 축구 선수들의 스포츠 경기에도, 심지어 주일미군부대 마크의 상당수가 욱일기를 쓰고 있다.


국내에서 국외로 확산된 욱일기에 대한 비판 여론

이와 달리 국내에서는 욱일기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2013년에 국회에서 욱일기를 공식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국내 연예인들이 욱일기가 그려진 옷을 입고 방송 출연하여 세간의 비판을 받기 일쑤였다. 2016년 8월 그룹 소녀시대 멤버 티파니가 광복절 전날 욱일기 이모티콘을 올려 네티즌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이는 국내에서 머물지 않고 국외로 확산하였다. 2009년에 ‘나이키 에어조던 12’ 신발 깔창에 욱일기 문양이 있다고 하여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국제축구연맹 FIFA는 공식 주간지 표지에 게재했던 욱일기 디자인을 일장기로 바꾸었다. 2019년 8월에는 PSV가 도안 리츠의 이적을 기념하며 욱일기 콘셉트의 포스터를 올렸다가 항의를 받고 이를 수정하였다. 하지만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당시 욱일기가 등장하여 논란을 빚었는데도, 이번 카타르 올림픽에도 일본인들이 여전히 욱일기가 들고나와 논란을 초래하였다. 


욱일기=하켄크로이츠, 욱일기=군국주의 망령

욱일기 사용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니 오히려 한일 양국 간에 논란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우리 정부는 2018년 10월 제주도에서 개최한 해군 관함식에 참가하는 모든 국가에 자국 국기와 대한민국 국기만 배에 전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일본은 일본의 법에 근거하여 ‘태양기 게양’을 의무화해야 한다면서 관함식에서 철수하였다. 그 뒤 2019년 10월 일본에서 개최한 자국 관함식에 우리 해군을 아예 초청하지 않았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이순신 장군 메시지 인용 현수막(‘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은 철거됐지만, IOC가 욱일기 사용 금지 요청을 거부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와 달리 2022년 10월 열린 일본 해상자위대 국제관함식에 우리 해군이 참가하여 일본 해상자위함기에 경례하였다고 하여 비난 여론이 일기도 하였다. 우리 정부 측의 해명은 “일본 자위대 깃발과 욱일기는 다르다”였다.

한국인들이 욱일기에 대해 너무 과민하게 반등한다는 얘기도 있다. 욱일기는 해상자위대의 자위함 깃발로서 세계 각국에서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전범기’ 등의 용어까지 만들었다며 비난한다. 하지만 ‘욱일기=하켄크로이츠’, ‘욱일기=군국주의 망령’이라는 공식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서 해군복 차림에 어깨총을 한 일본인 노병(老兵)이 욱일기를 앞세우고 밴드 소리에 맞춰 행진하는 한 경계를 늦출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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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페낭섬에서의 일제 욱일기와 독일 나치 하켄크로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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