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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자주와 독립을 위한 국제 연대 투쟁
작성자 : 홍보문화부 작성일 : 2013-08-29 조회수 : 8,659

22화 자주와 독립을 위한 국제 연대 투쟁
이미지 하단에 자세한 내용이 있습니다.

독립을 위한 임시정부의 노력은 다른 나라와의 연대투쟁을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1941년 12월 8일, 일제가 미국의 해군기지인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자, 임시정부에서도 즉각 '대일선전성명서'를 통해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지요. "선전포고다! 우리 미국은 일보과 전쟁에 돌입한다" "외무부장 조소앙 - 왜구를 한국과 중국 및 서태평양에서 완전 몰아내기 위해 최후까지 싸운다!"

또한 1945년 2월28일에는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이는 임시정부가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해, 전후 처리에서 연합국의 지위를 인정박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독일! 너네도 우리 적이다!"

임시정부의 군사활동은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는데 하나는 전후 연합국의 지휘를 획득하기 위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해외 무장세력의 통일을 도모해 직접적인 국내 진입작전을 모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1940년 9월 임시정부가 국군으로 창설한 한국광복군이 기반이 되어 적극적인 군사활동을 추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싸운 연합국이지요." "모두 모여 단결해서 우리나로 당당히 들어갑시다!"

임시정부는 광복군을 창설한 초기, 영국군과 함께 버어마에서 공동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저 앞에 일본군들이 있다." "머라고 하는 것 같은데 알아들을 수가 없네" "일본말과 영어를 잘 하는 군인들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한국 광복군이오. 우리가 도와주겠소" "고맙소. 저들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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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들이 이곳을 포위할 거라고 하는군. 저기 산 아래로 내려갑시다." "큰일 날 뻔했네. 고맙소"

광복군은 직접 일본군과의 전투에도 참여하기도 했습니다.(버어마 탈환작전)

버어마에서 커다란 승리를 거두고 광복군의 활동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인도. 버어마 전선에서 영국군과 연합 작전을 전개한 한국광복군

영국에 이어 연합국과 준비한 두 번재 공동 작전이 미군 OSS(전략첩보기구)와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한 것입니다. "일본에 이기기 위해서는 한반도에서 첩보활동을 할 군대가 필요한데.. 우리 미군은 바로 눈에 띈단 말야" "우리 광복군과 함께 작전을 수행합시다. 우리나라에서 하는 싸움에 우리가 빠질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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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광복군과 OSS가 함께 국내 진입작전을 실행한다는 독수리작전(The Eagle Project)을 위한 특수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OSS훈련은 미국측에서 담당하였고, 1945년 5월부터 훈련에 들어갔습니다. 제2지대(시안), 제 3지대(리황)

광복군 중 제2지대와 제3지대가 미국인 교관들에게 훈련을 받았습니다. 3개월 동안 이루어진 훈련에서 첩보 및 통신, 독도법이나 무전교신 등을 교육받았는데, 광복군 요원들의 훈련성과에 교관들은 크게 만족하였답니다.

드디어 1945년 8월 4일 제1기생의 훈련이 완료되고 이들의 임무는 잠수함으로 국내에 진입하여 국내에서 공작과 인심을 선동하고, 무기를 비행기로 운반해 후방에서 무장활동을 전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OSS와 함께 국내로 진입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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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제의 항복 소식이 전해지면서 광복군을 국내에 진입시킨다는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일본이 항복했데." "기쁘긴 하지만 그 동안 훈련하고 노력한 것이 모두 허사가 되었네!"

광복 후 임시정부는 국내로 정진대 파견을 준비했습니다. 정진대는 일제의 투항을 접수하고 국내의 치안을 담당하기 위한 선발대였지요. 그러나 8월 18일 여의도 비행장에 도착한 정진대원들은 일본군의 저항에 가로막혀 28시간만에 다시 중국으로 되돌아와야 했습니다. "돌아가지 않으면 쏘겠다."

비록 일제의 무조건 항복으로 결실을 맺니는 못했지만, 임시정부가 전후 연합국의 지위를 업기 위해 연합군과 공동으로 다양한 군사작전을 추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버어만 탈환작전, 독수리 작전"

독립기념관 가을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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