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맨위로 맨위로 버튼

보도자료

  • home
  • 소식
  • 언론보도
  • 보도자료
독립기념관, 한국공군의 뿌리,‘윌로우스 비행학교’사진 최초 공개
작성자 : 고객홍보부 작성일 : 2021-05-12 조회수 : 631 사진자료.zip

독립기념관, 한국공군의 뿌리,‘윌로우스 비행학교’사진 최초 공개
- 3·1운동 퍼레이드, 도산 안창호 가족 등 미주 독립운동 사진 등 647점 -

< 자료공개 행사 개요 >

o 일 시 : 2021. 5. 13.(목) 오전 10시 30분
o 장 소 : 독립기념관 밝은누리관 강의실
o 공개자료 : 윌로우스 비행가양성소 사진, 다뉴바 3·1독립선언 1주년 기념행사 사진, 필라델피아 제1차 한인대회 사진, 도산 안창호 가족 등 미주 독립운동가 가족사진 등(임성실 사진첩 306점, 폴림 사진첩 299점, 대형 사진 42점 등 총 647점)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은 2021년 5월 13일(목) 미국 캘리포니아 윌로우스(Willows)에서 창설된 한인비행가양성소 학교건물(校舍) 등 미주지역 독립운동 사진 60점을 최초로 공개한다. 대한민국 공군의 뿌리인 윌로우스 한인비행가양성소의 사진은 1920년 당시 비행학교의 모습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일한 사진으로, 비행학교 건물을 복원하는 데에 활용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번에 공개되는 사진자료는 독립기념관 전시 및 연구·교육 등에 활용될 것이고, 향후 『사진자료집』으로 발간하여 미주지역 독립운동의 역사를 널리 알리고자 한다.


※ 기증자 마르샤 오(Marsha Oh-Bilodeau)는 독립유공자 임성실(‘15 건국포장)의 증손녀. 이번 공개 사진은 임성실 선생 가족 사진첩에서 발굴됨. 임성실(1882~1947)은 미주지역 여성독립운동 단체인 대한여자애국단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를 지원함


□ 주요 자료 설명


o 윌로우스 한인비행가양성소 학교 건물 사진
윌로우스 한인비행가양성소에서 학생들을 교습하였던 학교 건물 사진이다. 한인비행가양성소는 1920년 7월 5일 미국 캘리포니아 윌로우스(Willows)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 장군과 재미 한인 재력가들에 의해 정식으로 설립되었다. 비행학교에서는 한인청년 30여명에게 비행술과 군사교육을 실시하여 일제와의 공중전을 위한 비행기 조종사를 양성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 학교에서 조종술과 군사훈련을 받았던 박희성·이용근은 1921년 7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육군 비행대 참위(소위)로 정식 임명되었다. 비행학교의 학생들은 비행조종술과 무선전신, 군사훈련 받아 일제와 공중전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 한인비행가양성소 교사는 1918년 폐교된 ‘퀸트학교(Quint School)’ 건물을 임대하여 사용하였고, 이 건물은 현재 다른 곳으로 옮겨져 일반 창고로 사용되고 있음(7233 State Hwy 162, Willows, Glenn County, CA)
- 상단에 ‘Training Camp, Willows, Cal.’라고 하여, 한인비행가양성소 학교 건물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음. 학교 교사 정면에 성조기가 게양되어 있고, 마구간과 창고가 있고, 뒤에는 학생들이 기숙하던 막사가 희미하게 보임

o 다뉴바 3.1독립선언 1주년 기념식 사진
1920년 3월 1일 독립선언을 축하하기 위해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주관으로 다뉴바·새크라멘토·로스앤젤레스 세 곳에서 동시에 기념행사가 개최되었다. 다뉴바에서 3.1절 기념행사는 중가주 한인동포 500명이 참가하여 대규모 축하 퍼레이드를 벌여, 우리민족이 독립을 선언하였다는 것은 미국사회에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이번 공개행사에는 다뉴바 3.1독립선언 행사의 모든 장면을 담은 사진 18점이 최초로 공개되어 당시 미주 한인들의 독립의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3.1독립선언 퍼레이드는 8개 부분으로 나누어, 한인교회를 출발하여 다뉴바 시내를 돌아오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 제1부. (제1행렬) 한국과 미국의 대형 국기 행렬, (제2행렬) 말을 탄 대행렬 지휘관, (제3행렬) 미국인 군악대, (제4행렬) 청년 28명이 미국 육군복을 입고 행군, (제5행렬) 적십자 간호부의 태극기 행렬, (제6행렬) 동포 150명이 작은 국기 행진, (제7행렬) 자동차 28대에 태극기 문양으로 단장 행렬, (제8행렬) 대형 트럭을 탄 아이들 군악대
- 제2부. 이순기의 사회로 기념식 및 연설회

o 제1차 세계대전 기념일 퍼레이드 기념식 사진
1920년 11월 11일 제1차 세계대전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다뉴바에서 대대적인 퍼레이드가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승전기념 퍼레이드에 참가한 한인들의 사진 25점이 공개된다. 중가주지역의 한인동포들은 미국의 승전을 축하하고, 또 한인들의 독립의지 미국사회에 알리기 위해 퍼레이드에 참가하였다.
- 대형 태극기를 들고 한인 여성들이 앞장을 서고, 뒤에 1882년 조미조약 장식 대형 트럭에 한복을 입은 한인들 탑승함. 한복을 입은 한인 남녀가 꽃으로 장식한 대한인국민회 트럭에 탑승.
- 한인청년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한인 아동들이 뒤를 따름

o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참가 한국 선수단 사진
로스앤젤레스에서 1932년 제10회 올림픽에 마라톤 권태하·김은배, 복싱 황을수 세 명의 한국선수가 처음으로 올림픽으로 참가하였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당시 미주 한인동포들의 열성적인 지원과 응원을 받은 한국선수들은 일본의 노골적인 방해에도 불구하고 마라톤에서 김은배 6위, 권태하 9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미주동포들은 올림픽에 참가한 한국선수들을 위해 성대한 환영식을 열었고, 마라톤 코스마다 태극기를 흔들며 열성적인 응원을 하였다.
세 명의 한국선수들과 미주동포들이 함께 찍은 사진 28점을 최초로 공개한다. 이들 사진을 통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참가한 한국선수들이 올림픽 기간 동안 미주 한인동포들과 얼마나 긴밀하게 지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해당 사진들은 지금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선수들의 일상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체육사적으로도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마라톤 6위 김은배 선수
-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마라톤 9위 권태하 선수와 전경무
-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참가 한국선수와 한인동포 2세(2.8클럽)

o 도산 안창호 등 독립운동 가족 사진
도산 안창호는 국내와 중국·러시아 세계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이끌며 오직 민족독립을 위해 활동하였던 독립운동 지도자였다. 도산이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에 전념하는 동안, 미국에 있었던 부인 이혜련, 필립·필선·수산·수라·필영 다섯 자녀들의 사진 19점이 공개된다. 그리고 임성실·강혜원 등 미주지역 독립운동가 가족들의 사진 43점도 공개된다.
- 도산의 막내아들 안필영(랄프)의 사진. 안필영은 1926년생이기 때문에, 사진을 촬영한 1932년 당시 나이는 7세 정도로 추정됨
- 임성실 가족 사진. 임성실은 1919년 다뉴바의 신한부인회 대표로 대한여자애국단 설립에 참여하여 다뉴바 지부 단장을 역임하였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임시정부 등 독립운동 단체를 지원함
- 강혜원 가족 사진. 강혜원(1885~1982, ‘95애국장)은 신한부인회를 조직하고 1919년 대한여자애국단의 총단장으로 군자금을 모아 임시정부를 지원하였음. 3남 김을(Earl Kim)은 유명한 작곡가로 하버드대학 교수를 역임함.

o 필라델피아 제1차 한인대회 사진
국내에서 독립선언을 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서재필은 이승만·정한경과 함께 1919년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미국의 옛 수도 필라델피아 리틀극장에서 ‘제1차 한인회의(The first Korean Congress)’를 개최하였다. 미주에서는 이 대회를 미주지역의 3.1운동이라고 하여, 각지에서 모인 한인대표들과 미국인을 포함하여 150여명이 참가하였다. 참가자들은 대회가 끝나고 리틀극장에서 미국 독립관까지 퍼레이드를 벌였으며, 독립관에서 독립선언식을 재현하였다.
이번에 공개되는 사진은 서재필·이승만 등 제1차 한인대회 참가자들이 함께 찍은 것으로, 지금까지 널리 알려진 것과는 약간 왼쪽에서 촬영되어 인물들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o 장인환 의사 사진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리부두에서 친일외교관 스티븐스를 처단한 장인환(1878~1930)의 사진도 공개된다. 장인환 의사는 스티븐스를 사살하여 미국법정에서 2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미주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다. 지금까지 장인환 의사의 사진은 1919년 가석방될 당시 전명운 의사와 악수하는 사진과 책을 들고 있는 사진만이 알려져 있었다. 이번에 공개되는 장인환 의사 사진은, 감옥에서 석방된 이후 한인동포 소녀와 함께 찍은 것이다.

공공누리의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