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년 사
- 독립 정신으로 코로나19 위기를 이겨냅시다 -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2020년이 가고 2021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작년은 독립운동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가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이 출범한 지 8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당연히 정부와 시민사회 모두 이를 기념하는 다양한 사업을 계획했지만 코로나19라는, 인류 역사상 미증유의 사태로 인해 대부분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코로나19는 우리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 자체를 크게 흔들었습니다. 오죽하면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시대를 나누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겠습니까?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K방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장 모범적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한 사례로 세계 모든 나라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K팝에 이은 K방역은 세계 속에서 빛나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보여줍니다.
세계 경제가 얼어붙은 상황이지만 한국의 잠재적 경제 성장률은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국회의원 선거까지 성공적으로 치러서 코로나19에도 흔들리지 않는 민주주주의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새해를 맞아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지난 역사 특히 독립운동 역사를 다시 되돌아보게 됩니다. 한 세기도 더 전에 우리는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습니다. 나라가 망한 것은 반만 년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일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결단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이 비탄에만 빠지지 않고 떨쳐 일어났습니다. 독립운동에 나선 것입니다.
1910년 강제병합 이후 9년이 지난 1919년 3·1운동의 독립선언과 만세시위에 참여한 사람은 200만 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당시 인구가 1,600만 명에서 1700만 명 정도였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3·1운동에 참여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독립 의지는 강렬했습니다.
모든 것을 바쳐 독립을 이루려고 한 독립운동가의 숫자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이 스스로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제가 파악한 숫자는 일제의 의도에 따라 축소되거나 왜곡된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도 적어도 수백 만 명이 어떤 형태로든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몇몇 이름난 독립운동가만을 기억하고 있지만 독립운동의 저변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넓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일제 강점 이후 해방의 그날까지 독립운동은 단 한 순간도 끊이지 않고 지속되었습니다. 국내, 중국, 만주, 러시아, 미국, 일본은 물론이고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에서든 독립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세계 역사에서 우리의 독립운동 같은 사례는 더 찾아볼 수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나라의 주권을 일본에게 빼앗긴 엄혹한 상황에서도 우리의 선조들은 조국 독립과 민족 광복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독립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날을 맞이했습니다. 절망의 시대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정신이야말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올해는 ‘신흥무관학교 이전의 무장투쟁이 신흥무관학교로 흘러들었고, 신흥무관학교 이후의 무장투쟁이 신흥무관학교로부터 흘러나왔다’라는 평가를 받는 신흥무관학교가 만주 서간도 오지에서 출범한 지 1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신흥무관학교에는 출신 지역, 신분,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오로지 독립운동을 위해서였습니다.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해 만주로의 험난한 여정을 마다하지 않은 유명·무명의 애국지사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다시 되새기게 됩니다.
동시에 올해는 독립운동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일컬어지는 자유시 사변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에서의 승전에도 불구하고 더욱 거세지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대부분의 만주 독립군 부대가 만주를 떠나 러시아 자유시(알렉세예프스크)로 이동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독립운동 방략을 둘러싼 독립운동 세력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자유시에 집결했던 많은 독립군이 희생을 당했습니다. 독립이라는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단합과 연대가 무엇보다 필요했지만 내부의 분열과 대립으로 큰 희생을 치룬 것입니다.
독립운동의 역사는 길게 보면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고 단합과 연대를 이루어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자유시 사변 같은 참극이 준 교훈을 바탕으로 독립운동가들은 모두가 바라는 최후의 목표 곧 독립을 이루기 위해 작은 생각의 차이는 극복하려는 노력을 거듭했습니다. 대표적인 보기가 1940년대 이후 합작 정부로 다시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입니다. 지금의 국회에 해당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은 스스로를 통일의회라고 규정할 정도였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이겨내는 것이야말로 지금의 대한민국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 과제를 해결하는 데 나라가 없는 상황에서도 독립을 위해 서로의 손을 맞잡은 독립운동의 역사가 거울이 되었으면 합니다. 빠른 시간 안에 코로나19 사태가 끝나 자유롭게 움직이게 되었을 때 가까이 있는 독립운동 사적지를 찾아 독립 정신을 이은 후손들이 선조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라고 아뢸 수 있는 2021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독립기념관장 이 준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