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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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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안병무(安炳武 : 1912 ~ 1986)
작성일 : 2011-02-08 조회수 : 7,733 pic91.jpg pic91-1.jpg

pic91 전경

pic91-1 전경

호는 해암(海菴)이며, 평남 안주읍 신의리에서 태어났이다. 1930년 상해 유학을 떠나 복단(復旦)대학에 재학 중 1932년 상해 사변이 발발하자 천도교 청우당원(靑友黨員)으로 복단대학 학생의용군에 가담하여 항일운동을 하였으며, 중국19로군(中國十九路軍)에 편입하여 대일전에 참가하였다. 한편 상해 한인학우회에 가입하여 재무위원에 선임되기도 하였다. 1937년부터는 남경(南京)에서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의 청년단에 가입하여 역보(力報), 항전일보(抗戰日報), 건군반월보(建軍半月報) 등의 잡지에 독립군의 활동이나 독립운동, 또는 일제의 식민통치를 비판하는 등의 원고를 기고하였다. 특히 1940년 9월에는 󰡔일본 제국주의 철제 하의 조선(日本帝國主義鐵蹄下的 朝鮮)󰡕이라는 책자를 발간하여 한국 내의 일본 폭정을 폭로하는 등의 언론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9월부터 광서성(廣西省)에 있는 중국 중앙군관학교 제6분교에서 일본어를 교수하였는데 그곳에서 다시 중국 제3전구에 가입하여 대적선전을 담당하였다. 1944년 3월부터는 임시의정원 비서에 임명되었으며, 동년 6월에는 임시정부 선전부 비서 및 편집위원을 겸하여 중경(重慶)에서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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