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식민지배 아래에서 일어난 1919년 3·1운동은 자유와 평화를 위한 외침이었습니다.
한마음 한뜻이 되어 외친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은 국내를 넘어 국외 한인사회까지 울려 퍼졌습니다.
민중은 스스로 나라의 주인이자 독립운동의 주체임을 깨닫게 되었고, 3·1운동은 이후 대중투쟁과 같은 다양한 모습의 독립운동을 펼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은 일제에 의해 국권을 완전히 빼았겼다. 무자비한 무단통치가 시작된 식민지배 속에서도 항일독립운동은 끊이지 않았다. 이 시기 국내와 만주·연해주·미주 등 국외에서는 새로운 독립운동 활로를 찾기 위한 노력들이 이루어졌다. 1910년대 일제의 핍박 속에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항일독립운동을 위한 민족적 역량이 쌓이게 되었다. 이와 함께 독립운동가들은 제1차 세계대전 전후로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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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동단결선언(大同團結宣言 / 1917. 7)
- 상하이에서 신규식申圭植ㆍ박은식朴殷植ㆍ신채호申采浩등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을 위해 민족대회의 소집을 제창한 선언문.
<수잔안(Susan Ahn) 기증>
3·1운동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저항하여 일어난 우리 민족 최대의 독립운동이었다.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무단통치로 고통받고 있던 우리 민족의 울분이 3·1운동으로 봇물처럼 터진 것이다.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한반도를 넘어 국외 한인사회까지 울려 퍼진 거족적인 3·1운동으로, 우리 겨레는 독립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 독립운동은 소수의 지도자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민중이 참여하는 대중운동으로 확대되었다. 민족주의 역사학자 박은식이 ‘혁명’으로 평가했듯 3·1운동은 한국독립운동사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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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ㆍ8 독립선언서(二八獨立宣言書 / 1919. 2. 8)
- 1919년 2월 8일 일본 유학생으로 조직된 조선청년독립단朝鮮靑年獨立團 명의로 도쿄東京의 기독교청년회관에서 발표한 독립선언서.
우리 민족의 자주성과 일제 침략의 부당성, 조선독립의 당위성을 피력했다.
<목포정명여중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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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ㆍ1독립선언서(三一獨立宣言書 / 1919. 3. 1)
- 민족대표 33인의 명의로 조국 독립과 민족 자주를 선언한 3ㆍ1독립선언서.
이 선언서는 국내는 물론 국외 동포사회에까지 전파되어 한국민의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
<김선량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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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산지방에 우송된 독립선언서(1919)
- 1919년 3ㆍ1운동 당시 서울의 정석해鄭錫海가 평안북도 철산의 유봉영劉鳳榮에게 보낸 독립선언서.
독립을 선언하고 인도주의에 입각한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자주 독립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오진형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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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자유대회 회의록(1919)
- 재미 한인들이 미국 독립의 상징 도시인 필라델피아에서 1919년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개최한 한인자유대회 회의록.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과 한국 독립을 위한 외교정책 방향에 대해 논의한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다.
<서재필기념재단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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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용기(文鏞祺 혈의 - 1919)
- 전북 이리(현 익산) 장날에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현장에서 순국한 문용기(1878~1919)가 입었던 피묻은 저고리와 두루마기.
문용기는 만세를 부르다 일본 경찰이 휘두르는 칼에 오른손을 잃었으나 왼손으로 태극기를 들고 계속 만세를 부르다가 왼손마저 절단되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맨몸으로 군중을 지도하다가 일본 경찰의 칼에 찔려 순국했다.
<정귀례 기증>
우리 겨레 스스로 이루어낸 3·1운동은 역사의 거대한 분수령이 되었다. 3·1운동의 결과로 우리 역사 최초의 민주공화정 정부인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리고 1920년대 이후 노동운동·농민운동·여성운동 등 전개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였다. 다양한 계층이 역사의 주체가 되어 이끈 대중투쟁으로 여성, 노동자, 농민, 천민,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독립운동의 저변이 확대되었다. 3·1운동을 분수령으로 하여 민중은 더 이상 독립운동의 조력자가 아니라 주체로서 우뚝 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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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독립선언서(大韓獨立宣言書 / 1919. 4)
-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지방총회에서에서 발행한 독립선언서.
3ㆍ1독립선언서 전문과 공약3장·임시정부 선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정기훈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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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원본(1929)
- 조선일보사에서 발행하여 문자보급운동을 전개하며 사용한 교재.
<조선일보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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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통사(韓國痛史 / 1915)
- ‘국교國敎와 국사國史만 살아있으면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박은식朴殷植(1859~1925)이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저술한 역사책.
<하와이대한인국민회 기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