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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속의 태극기
작성자 : 고양 백석초 6학년 김0 수상 : 은상(고학년) 작성일 : 2016-09-05 조회수 : 1,968

내 마음 속의 태극기

내가 5살 때인가? 유치원에서 처음으로 태극기를 그려보았다.

초등학교에 들어와서도 종종 태극기를 그려보았지만 아무런 의미도 마음도 없었다.

나에게는 태극기하면 떠오르는 두 가지 기억이 있다.

첫 번째 기억은,

2015년 5월 21일 엄마의 큰아버지, 나에게는 큰 외할아버지께서 86세의 연세로 돌아가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빈소에 있을 때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어떤 아저씨 두 분께서 오셔서 할아버지 영정사진 옆에 태극기를 걸어놓고 가셨다.

아저씨들이 가시고 나는 외할아버지께 태극기를 왜 걸어놓고 가셨는지 여쭈어 보았더니, 큰 할아버지께서는 21살 대학생이셨을 때 6․ 25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할아버지는 위생병으로 전쟁터에 나가셨다고 했다. 전쟁이 끝나고 할아버지는 계속된 두통에 시달리셨고, 긴 시간 흐른 후 병원에 가니 총알이 스치고 간 흔적이 나타났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그것도 모르시고 부상당한 분들을 치료하셨었나 보다.

이러한 공로가 나라에서 인정되어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묻히시게 되었다.

국가보훈처에서 두 개의 태극기가 보내져왔는데, 한 개는 할아버지의 관을 덮을 때 쓰는 것이고, 다른 한 개는 화장을 하고 난 후 모시는 함을 쌀 때 쓰는 것이라고 했다.

입관식이 진행되었고 마지막에 관위에 태극기가 올려 졌을 때 큰 할아버지께서 나라를 위해 정말 큰일을 하셨구나 생각을 하니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화장장에서도 할아버지는 태극기와 함께 화장되었다.

두 번째 기억은 작년 여름, 우리 가족은 아빠의 권유로 울릉도와 독도를 가게 되었다. 난 배멀미를 해서 가고싶지 않았는데 아빠께서는 꼭 가봐야 한다며 예약을 해 놓으셨다. 강원도까지 차를 타고 강릉 여객터미널에서 울릉도의 저동항까지는 무사히 잘 도착을 했다. 울릉도에서 하루를 지내고 독도 여객선을 타고 도동항을 출발 한 지 30분쯤 방송이 흘러나왔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독도에 배를 접안할 수 없어 울릉도로 돌아간다고...

배 안의 사람들은 웅성거렸고 나는 너무 짜증이 났다. 엄마 아빠도 너무 속상해 하셨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려나 했더니 아빠께서는 독도에 꼭 가 봐야 한다며 내일 하루 더 도전하자고 하셨다.

멀미 때문에 머리도 아프고 배도 아프고... 해외여행도 아니고 독도 여행이라니..

친구들은 방학이라며 해외여행 간다고 자랑하던데...

다음날 아침 독도를 향해 다시 출발했다. 또다시 접안이 어렵다는 방송이 나오고 선장님께서는 다시 시도해 보시겠다는 방송을 하셨다.

울릉도에서 출발한지 2시간 후 접안에 성공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독도에 내려 경찰 형들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그때 내 눈에 보여진 저 멀리의 태극기...

꼭대기에서 힘차게 휘날리고 있었다.

엄마 아빠가 갑자기 우셨다. 나도 울었다.

태극기를 보는 순간 설레임과 내 속에 있던 애국심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6학년이 되어 사회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일본에서 왜 독도를 그렇게 탐을 내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영해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항상 국경일이면 태극기를 달아야 하는게 나의 일이어서 귀찮아서 짜증을 내곤 했다.

비를 맞아도 대충 구겨 넣었다가 혼이 난 적도 있었다.

엄마는 매 년 내 생일 3월 10일되면 베란다에 태극기를 걸어주신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내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걸 자랑스러워하라고 매번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자랑스럽다. 태극기를 보며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난 대한민국의 멋진 초등학교 6학년 김 0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