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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독립기념관장 신년사
작성자 : 고객홍보부 작성일 : 2019-12-31 조회수 : 704

신 년 사

지금부터 100년 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독립전쟁 원년을 선포했습니다.

작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통해 대한민국이 출범한 지 100주년이되는 해여서 나라 안팎에서 이를 기리는 일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올해도 작년못지않게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일이 일어난 것을 기리는 행사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올해는 대한제국이 일제에 강제로 병합된 지 1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은 해마다 8월 29일이 되면 국치의 아픔을 다시 새기면서 독립의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어디 독립운동가들뿐이었겠습니까? 일반 민중도 국치일을 잊지 않고 그아픔을 되새겼습니다. 작년에 일본 아베 정권에 의해 시작된 경제 침략 전쟁이 아직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올해 강제병합 110주년은 남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올해는 또한 독립운동의 여러 방략 가운데 최고, 최후의 방략이라 평가받는 독립전쟁과 관련해서도 기억할 만한 해입니다. 강제병합 이전부터 나라 안팎에서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한 다양한 항일투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것은 ‘독립군’이라는 말로 상징되는 무장투쟁, 곧 독립전쟁이었습니다.

독립전쟁이란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독립을 이루기 위해 독립군을 양성하는 한편, 독립을 이루는 데 필요한 실력을 쌓았다가 일본과 다른 나라(미국, 중국, 러시아등)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면 이를 기회로 일제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독립을 쟁취하려는 일련의 활동을 가리킵니다. 강제병합 이전부터 싹트기 시작한 무장투쟁은1945년 8월 15일 해방이 이루어질 때까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지속되었습니다.많은 선열이 독립군에 들어가 목숨을 바치겠다는 각오로 남의 땅인 만주와 연해주일대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웠고, 더 많은 선열이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한 활동에 헌신했습니다.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다음 해인 1920년에 들어독립전쟁 원년을 선포했습니다. 일제와의 무장투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입니다. 대한제국이 일제에 강제로 병합된 것은 무력의 열세에서비롯된 것이니 다시 일제와 독립전쟁을 벌여 승리를 거둠으로써 일제 식민 지배에서벗어나 독립을 이루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독립전쟁 원년 선포는 단지 선언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1920년에는 만주의 봉오동과청산리에서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 정규군과 전투를 벌여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의병전쟁 이래 일본 정규군과의 전투에서 거둔 가장 큰 승리였습니다. 병력이나 화력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이던 독립군이 거둔 두 승리는 이후 독립운동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봉오동전투나 청산리전투를 전후해 수많은 만주 독립군 부대가 한반도와 만주의 국경선인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국내로 들어와 군자금 모집, 친일파처단 등의 활동을 벌였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독립전쟁 원년을 선포한 뒤 정규군을 창설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현실적으로 남의 땅 중국에서 ‘국군’을 창설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가들은 한 순간도 무력에 의한 일제와의 최후의 결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오랜 염원은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의 창군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올해는 한국광복군 창군 8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임시정부의 정규군으로 출범한 한국광복군은 만주와 연해주 등지에서 벌어진 독립군의 무장투쟁을 계승한 것이었습니다. 한국광복군은 연합군의 일원임을 자임했습니다. 중국과 군사협정을 맺고 있었고 영국군이나 미군과의 합동작전도 펼쳤습니다.한국광복군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제에 선전포고를 할 수 있었습니다.연합국이 카이로선언을 통해 한국의 독립을 공인하게 된 배경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의 대일항전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독립군에서 한국광복군으로 이어지는 무장투쟁은 독립운동사에서 더없이 귀중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1945년 8월 15일의 해방은 우리 스스로의 피와 땀으로 쟁취한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무장투쟁을 포함한 독립운동의 결과로 출범한 것이라는 데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국내외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다가 전사한 독립군의 전모를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많은 독립군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막연하게 알고 있을 뿐입니다. 독립전쟁 원년 선포 100주년,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 승전 100주년, 한국광복군 창군 80주년을 기리는 올해는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싸우다가 희생된 ‘무명’의 독립용사를 다시 기억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합니다.

독립기념관장 이 준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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